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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어 귀어 1계명 ‘이방인’ 꼬리표 잘 떼기(완도군, 삼남매참전복)
등록일 : 2021-04-01 작성자 : 서울센터 조회수 : 402
사례 및 상세 귀어 1계명 ‘이방인’ 꼬리표 잘 떼기(완도군, 삼남매참전복)_2


귀어 1계명 ‘이방인’ 꼬리표 잘 떼기

                                                   - 완도군 노화읍 삼남매참전복 조상현 씨



완도군 노화읍 ‘삼남매참전복’ 조상현(44) 씨. 올해로 귀어 6년차, 도시 생활을 접고 아내 신은진(41) 씨와 함께 뛰어든 인생 2막이 전환기쯤 도달한 것 같다는 게 스스로 평가다. ‘이방인’ 꼬리표를 떼고 ‘현지인’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어민’으로서 자격 인정이랄 수 있는 ‘어촌계 가입’ 실현이 이같은 근거 중 하나다.

본래 바다는 주인이 없어서 ‘공유수면’으로 관리되는 자산. 하지만 오랫동안 바다를 터전으로 생계를 꾸려온 어민들이 관습법상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 ‘땅’처럼 소유하고 경작할 권리는 오직 그들만의 몫. (실제 어민들은 바다를 ‘땅’이라 부른다)

이처럼 모든 바다(땅)는 명목상 ‘임자’가 있다는 것이고, 이를 관리하는 게 마을별로 조직돼 있는 ‘어촌계’다. 한정된 수면을 이미 구획 나눠 소유하고 있으니, 새로운 이에게 나눠줄 바다가 얼마나 남았겠는가. 어촌계 가입은 물리적으로도 명분상으로도 쉽지 않은 문턱이다. 마을에 따라선 입회비가 1억 원대에 이른다는 곳이 있을 정도다. 물론 돈이 있다고 무조건 가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현지인들의 인정. 진짜 ‘어부’가 됐구나라는 판단이 서야만 가능성이 열린다.

어촌계 가입은 양식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해서 귀어인들이 현지에 정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관문이 어촌계 가입이다.

이 어려운 걸 상현 씨가 해낸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시기 귀어한 이들 중 어촌계에 가입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대기업 그만두고 호기롭게 발디딘 노화도

드디어 ‘내 땅(바다)’ 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이게 바로 ‘땅’(바다) 불하로 이어지진 않는다. “‘땅’에 다리라도 살짝 걸쳤다는 느낌?” 상현 씨 현재 심정이 이렇다.

2015년 상현 씨가 귀어할 당시, 이 같은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완도군 노화읍은 부부에겐 연고가 없는 낯선 마을. 상현 씨의 누님이 완도에 산다는 게 끄나풀 된 인연의 전부다.

막상 내려와 보니 가족들과 거처할 집 한 칸 구하기도 어려웠다. “노화고등학교 앞에 마을회관으로 쓰던 집이 있었어요. 일단 그곳을 수리해서 살았죠.”

허름하긴 해도 거처를 마련했으니, 이젠 필요한 건 생계를 위한 일. 보란 듯 대기업에 사직서를 쓰고 나왔을 때 만해도 상현 씨는 미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회사 사정이 복잡해져 직장 생활을 계속할 에너지가 소진된 거죠. 평소 낚시를 좋아해서 어업에 종사해보자는 생각은 있었고요. 늘 ‘귀어’를 생각하고 있었더니, 막상 시기가 돼 결정은 어렵진 않았죠, ” 30대 후반이었다.

아내 은진 씨는 남편 상현 씨에게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처음엔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떠밀었다. 남편도 막상 현실에 직면하면 몇 개월 못 버티고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상현 씨는 뚝심으로 노화도에 뿌리내렸고, 은진 씨 역시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2살 터울인 세 남매와 함께였다. 당시 막내가 갓난아기였다. ‘삼남매참전복’이란 상호의 연원이다.

‘전복의 고장’에 터 잡았지만, 어설프게도 그들은 “아이들 공부방”을 해볼 심산이었다. 대학원까지 마친 아내 은진 씨의 가방끈 긴 이력이 그 자산이었다.

이 대목에서 상현 씨는 귀어를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첫 번째 팁을 제공한다.

‘귀어하고 싶다면 지역부터 선택하지 말라’는 것이다. ‘(귀어해서) 할 일을 먼저 결정하고 이에 알맞은 지역을 찾으라’는 권유다.


할 일 결정이 먼저, 갈 지역 선정은 다음

“귀어인들과 만나서 얘기해보면 대부분 살고 싶은 곳을 정하고 그곳으로 갑니다. 내려간 뒤에 무엇을 할지 정하는 거죠. 여행이라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하지만 일을 갖고 생활해야 하는 차원에선 상황이 달라지죠.”

작물을 먼저 정하고 이에 알맞은 지역을 두루 살핀 뒤 장소를 결정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게 선행 조사다. 노화도에 왔으니 전복을 양식하자는 게 아니라 전복을 결정한 뒤 최적의 장소로 찾은 곳이 노화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입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말. 이는 귀어 정착 과정에서도 소홀해선 안될 원칙이다.

상현 씨가 귀어 4년 차인 2018년 집을 지을 때도 이 같은 원칙에 충실했다. 귀어 이후 줄곧 눈여겨본 바닷가 인접 농지였다. 전복을 판매하기 위해선 수조 운영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바닷물 유입이 쉬운 지형이어야 했는데 딱 그곳이었다. 토지 소유자의 의사를 수차례 확인한 뒤 마침내 매입에 성공해 현재의 보금자리를 갖게 됐다.

가족들이 살 공간, 전복 등 수산물을 보관하고 포장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갖췄다. 마당 한켠엔 게스트하우스도 한 동 들어섰다.

귀어의 실패 가능성 줄이기, 상현 씨의 두 번째 팁은 마을(사람들)과 친화다.

“뻘쭘한 귀어인이어선 안되고, ‘낫낫하게’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귀어인의 진정성을 느끼면 주민들 입을 통해 평판이 전달되고, 일과 돈이 연결되는 루트를 갖게 된다

“귀어 정착 초기 내 양식장이 없으니 주로 허드렛일을 했죠. 일 좀 해달라고 부르는 동네 사람들 양식장을 돌아다니며 몸으로 때우는, 그야말로 ‘날일’이었습니다.”

주민들과 친화해야 마을에 속히 뿌리내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게으름 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도왔다.


낫낫하게 잘 어울려야 친화력 배가

그렇게 일로 불러주는 집들이 많아졌고, 주민들과 친분도 쌓여갔다. 노화읍내 각종 단체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노화읍에 사단법인 성격의 단체만 해도 20여 개 됩니다. 되도록 많이 가입해서 활동하려고 애썼죠.” 단체에 가입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귀어인들이 할 일이 많아진다. 각종 봉사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는 친화력을 배가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제가 전복 소매업을 하는데, 직접 양식하지 않는데 물량을 어디서 확보하겠습니까?” ‘날 일’로, 봉사 활동으로 친분 쌓은 동네 양식장이 출하하는 날에 맞춰 물량을 조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귀어 초기, 그렇게 시작한 전복 소매 주문·배송 사업은 쏠쏠한 수입원이 됐다.

“산지에서 빠른 시간 내 직배송하니까. 전복을 받고도 한참 동안 살아있다고 합니다.” 알음알음 시작했던 전복 소매업이 지금은 억대 매출을 올리는 효자 산업이 됐다.

귀어 관련 각종 교육을 찾아다니며 필요 지식과 인맥을 쌓는 것도 초창기 정착에 도움이 될 팁 중 하나다.

“귀어 초기엔 참 많이 울었습니다. 성질 나서 울고, 외지 사람이라고 무시당해서 울고…. 그래서 지금 귀어 관련 교육에 가서 마이크를 잡으면 ‘울 각오를 하고 오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장벽과 갈증,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귀어귀촌학교 등 각종 교육이 도움이 됐다.

상현 씨는 귀어 정착을 위해 준비된 각종 지원 정책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땅(양식업 터전) 제공이 필수적인데, 경험해보니 자신과 같은 외지인에겐 도움되는 정책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귀어인 대부분은 귀향인들입니다. 외지에 나가 생활하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와 부모님 양식장을 물려받는 거죠.” 이렇게 양식장을 소유한 귀향인들이 각종 지원 정책을 싹쓸이하고 있는 실정. 귀어인구의 80~90%가 이와 같은 이들이라고 한다. 나머지 10%가 자신과 같은 외지인들인데, 자산을 물려받은 귀향인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귀어 정착 도우려면 ‘땅‘ 제공 필수”

“순수 귀어인들을 위해 면허지 제공이 필요합니다.” 100칸~200칸 정도라도 가두리 양식장을 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귀어 정착 지원의 핵심이라는 것. 500~600칸, 아버지 양식장을 물려받은 귀향인들과 비교되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비빌 언덕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상현 씨는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aT(농수산식품유통공사)센터나 완도군 귀어귀촌프로그램 등 초청에 적극 응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귀어는 어찌 됐든 젊은이들이 시골로 내려와 살겠다는 겁니다. 지역 차원에서도 보탬이 되는 자산이고, 활기를 되찾는 기회입니다. 그렇다면 잘 정착하도록 도와줄 이유가 충분하죠. 최소한의 기회(땅)는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오래 못 버팁니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담, 모든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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