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농민 생산한 건강한 먹을거리 한 가득
언니네텃밭 제철꾸러미 무안공동체
여성농민 텃밭서 생산한 농산물로
매주 화요일 제철꾸러미를 소비자들에게
화요일만 되면 무안군 여성농어업인센터 안은 분주해 진다.
11월17일 센터를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1시가 넘어 각종 채소가 담긴 상자들이 차례로 들어오더니 한쪽에선 종이 박스 ‘세팅’이 시작됐다.
개별 포장을 마친 채소가 하나 둘 종이 박스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위에 올라가는 것은 ‘11월 세 번째 제철 꾸러미 편지’.
“언니들의 늦은 고추밭, 마지막으로 따 들인 호박, 빈 밭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캐서 씻어 놓은 냉이, 기대 이상 노랗게 속이 찬 배추를 보면서 이젠 가을의 막바지가 왔구나 하고 겨울 채비를 서두르게 합니다. 조용히 번지는 코로나에 모두 건강한 겨울나기 하시길 기도합니다.”
언니네텃밭 무안공동체 협동조합의 ‘제철꾸러미’다.
언니네텃밭은 2009년 전국여성농민회의 사업단으로 출범했다.
전국에 17개 생산공동체가 있는데 무안공동체는 지난 2014년 깃발을 들었다.
여성농민들이 경제적 자립, 농사의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고자 연대체를 꾸린 것이다.
무안공동체에서 함께하고 있는 여성농민은 8명이다. 무안에서 계속 농사를 지어온 이들도 있지만 무안으로 귀농한 이들도 있다.
언니네텃밭 무안공동체 이인숙 사무국장은 2009년 귀농을 했다.
이전부터 귀농을 고민하던 차 나이도 들고 남편 건강도 좋지 않아 도시에서 더 살기 어렵다고 생각해 귀농을 결심했다.
“보통 귀농은 남편들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여자들은 가지 않거나 버둥거리다 오는 경우가 많아요. 농사를 하더라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텃밭은 풀과의 싸움, 회충과의 싸움이잖아요. 직접 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많은데 먼저 농사를 지은 분들이 이끌어주면서 같이 생산한 농산물을 모아 꾸러미를 하는 게 정착하는 데 큰 힘이 됐죠.”
이인숙 사무국장의 말처럼 언니네텃밭 무안공동체는 ‘선배’ 농민들이 앞에서 끌어주고, 귀농한 농민들이 밀어주면서 다져진 공동체 씨앗이 맺은 결실이었다.
무안공동체 여성농민들 모두가 소농이다.
100평~300평 정도 되는 텃밭에서 고구마, 양파, 무화과, 배추,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대농과 달리 조그마한 텃밭으로 먹고 살기에 충분한 수입을 얻기란 쉽지 않다.
정귀자 무안군 여성농민회장은 “농사 일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이 판로다”고 말했다.
언니네텃밭의 식량주권사업으로 시도된 제철꾸러미는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여성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 보장을 목표로 한다.
매주 또는 격주로 소비자 회원들에게 제철 채소를 담은 꾸러미를 보내는 도농 직거래 방식이다.
매주 화요일은 언니네텃밭 무안공동체가 각자 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로 꾸러미를 싸는 날이다.
꾸러미는 황토밭과 갯벌이 만나는 무안에서 여성농민들이 생산한 건강한 먹을거리로 채워진다.
구성은 제철 채소 4가지와 두부, 유정란, 식혜나 양파즙, 복숭아즙 등 가공식품, 깍두기, 파김치 등 반찬을 포함해 총 8가지.
시금치, 미나리, 상추, 쑥갓, 브로콜리, 깻잎, 고사리, 자색양파, 부추, 고춧잎, 감자, 가지, 옥수수, 대파 등. 계절마다 또 매주마다 다른 구성의 꾸러미가 소비자들을 찾아간다.
이날엔 배추, 냉이, 고춧잎, 고구마, 풋호박과 두부, 유정란, 깍두기로 꾸러미가 채워졌다.
최근엔 농어촌희망재단과 함께 지역 독거 어르신을 대상으로 반찬을 지원하는 ‘행복꾸러미’도 진행하고 있다.
제철꾸러미에 들어가는 농산물은 모두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하거나 자연채취한 것들이다.
언니네텃밭은 환경과 건강을 생각해 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토종유전자원 조사, 토종종자 채종포 운영, 토종씨앗 전시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무안공동체에 등록된 소비자 회원은 70~80명 정도다.
꾸러미를 보낼 땐 ‘제철 꾸러미 편지’를 통해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를 투명하게 소비자들에게 공개한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팁, 기대에 미치지 못한 수확에 대한 아쉬움 등도 고스란히 편지에 담는다.
“얼굴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언니네텃밭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기치다.
이인숙 사무국장은 “제철꾸러미를 통해 큰 소득은 아니지만 꾸준히 일정 소득을 보장할 수 있게 됐다”며 “함께 농산물을 모아 꾸러미를 보내면서 문화, 복지 생활할 수 있는 보탬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제철꾸러미를 함께 만들면서 여성농민들간 유대도 튼튼해졌다.
농사 짓는 법을 공유하고 좋은 먹을거리가 있으면 나누기도 하고.
농민수당과 같은 정책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 것.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매주 꾸러미에 뭘 넣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해 꾸러미를 포장하고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데 필요한 행정이나 회계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갑자기 비가 많이 와 다음 주 꾸러미에 넣을 농산물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수확이 적어 대체 농산물 확보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정귀자 회장은 “나가기로 한 농산물에 문제가 생겨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할 땐 정말 진땀이 난다”고 털어놨다.
취향에 따라 먹지 않는 채소를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거나 특정 채소를 더 달라고 하는 등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인숙 사무국장은 “꾸러미 포장 전 주말에는 작물 상태가 어떻나 걱정하느라 초긴장 상태다”며 “포장을 마친 화요일 저녁이 우리에겐 주말 같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정 회장도 “차라리 농사 일 하는 것이 더 낫다(웃음)”며 “일주일 내내 꾸러미에 뭘 넣을까 신경 쓰는 게 참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철꾸러미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생산자들의 고충과 노고를 알아주는 소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채소에 조금 흙이 묻어있거나 벌레가 있어도 이야기를 하면 소비자들이 이해를 해주셔요. 그렇게 오래 꾸러미를 받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제철꾸러미를 받고 “친정엄마가 보낸 것 같아 감사했다”고 감사의 인사를 보내온 소비자도 있었다.
이인숙 사무국장은 “제철꾸러미를 통해 귀농인들에게는 농촌 적응을 돕는 소득 사업의 기반을 다졌다”며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를 지키고 좋은 먹을거리를 같이 나누는 홍보 활동 등에 있어서도 언니네텃밭 무안공동체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무안공동체의 지난 6년을 평가했다.
앞으로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생산자 모집이다. 아무래도 들어가는 품에 비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참여 생산자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또 현재 꾸러미는 4인 기준이어서 1인 가구 증가와 같은 변화하는 흐름에 어떻게 맞출 것인가도 과제로 떠올랐다.
이인숙 사무국장은 “1인 가구가 늘어나다보니 소비자들에게 채소를 보내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은 물론 특수 채소의 포함 등도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