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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고흥]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라는생각으로 귀농을 하고있는 청년 고세훈
등록일 : 2025-02-25 작성자 : 서울센터 조회수 : 56
사례 및 상세 [고흥]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라는생각으로 귀농을 하고있는 청년 고세훈_3

지역 : 고흥 도덕면

이름 : 고세훈

재배품목 : 백향과, 포도, 토마토

면적 : 백향과 2,645㎡, 포도  2,645㎡, 토마토 1,653㎡


○귀농

수도권 인접한 인천에서 태어나 외곽에서의 논이나 밭을 봤지만, 농사라는 것은 저하고는 멀고도 먼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고,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면서 도시 생활에서의 미래를 상상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집의 형편이 안 좋아서 인력사무소에 나가기도 하였고 3잡을 뛰며 일도 했으며, 조금 운 좋게 캐나다에서 2년여를 일을하며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손재주로 어느 순간에 방송계에서 영상편집 일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모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원두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달콤 쌉싸레한 유자차를 즐겨 먹는다는 점일 뿐. 하지만 도시에서 부닥치며 너무 힘차게 달려와서일까, 2017년 12월, 크리스마스시즌에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열이 40도에 육박하는 인플루엔자 독감에 걸려 병원에서 격리 조치가 취해지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부모님께서 아버지가 귀촌하신다며 아버지께서 태어나셨다는 고흥으로 내려가신다고 하셨고, 부모님 곁에서 잠시 쉴겸 고흥이라는 먼 곳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처음 살게된 고흥은 인천처럼 바다와 인접하였지만, 캐나다처럼 조용한 곳이었고, 도시에서는 늘 달고 살던 비염도 어느 순간엔가 잠잠해졌다. 뻥 뚫려있는 도로가 좋았고 넓은 논과 밭이 익숙해졌으며, 시원한 바다가 좋았다. 고흥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이곳에서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도시 생활과는 달랐다. 인접한 방송국도 없었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툭하면 밤을 지새우는 영상편집일을 하기에는 지겨웠다. 물에서 3번이나 죽을뻔했었던 경험이 있어서 바다는 싫었다. 자연스레 나의 눈은 널따란 논과 밭으로 향했고, 무엇보다 평생 직업으로 삼으며 열심히 수고하면 그만큼의 소득을 얻겠구나 싶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유자차의 주재료인 유자의 주생산지가 고흥이라니. 이것은 운명인가 싶었다. 그렇게 나의 농사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창농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생활하던 나에게 농사란 무엇인가? 답은 모른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는 말은 어른들이 늘 이야기하던 ‘노년에 할 것 없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진정 어처구니 없는 말이고, 얼마나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 알지만, 당시에 나는 그만큼 무지했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냥 책을 찾아 읽고 달달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농사와 관련된 교육이 있는 곳을 찾았다. 2018년에는 귀농이라는 단어가 청년들에게는 아직 생소하였기에 인천에서 미처 옮기지 못한 짐도 챙기고 친구와도 지낼 겸, 인천에서 멀고도 가까운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한국농수산식품공사의 ‘at센터’에서 시행한 ‘귀농귀촌을 위한 교육’에서 은퇴를 고려하시는 어르신들과 교육을 받았고, 고흥으로 돌아와서는 집에서 가까운 농업과 관련한 교육을 찾아 농업교육포털과 인터넷을 뒤적였다. 이어서 여수에 위치한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창업에 관한 교육을, 전남 농업기술원에서 다양한 교육을 신청하고, 고흥군청의 인구정책과와 고흥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농업교육 관련 정보를 얻고 교육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9년 3월, 나의 농업교육 수료시간은 300시간을 넘어서게 되었고, 때마침 시행하던 ‘고흥군 귀농귀촌창업’에 지원하였다. 하지만 힘차게 내딛은 첫 걸음은 실패에 그쳤다. 당시 고흥군에 배정된 예산 부족과 지원자가 너무 많아 후순위로 밀린 것. 그렇지만 곧 상반기 2차 모집을 하였고, 나는 수월하게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귀농귀촌창업 대상자 선정 후 제일 먼저 농지를 찾았지만, 정보를 얻기가 너무 어려웠다. 부동산의 매물은 너무 비싸거나 적당한 크기가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한국농어촌공사가 운영한다던 농지은행에는 더더욱 매물이 없었다. 옆집의 숟가락 숫자까지도 알고 산다며, 시골에서의 농지들 대부분은 외지인들보다는 지역민 또는 주변 마을 주민들간에 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외지인보다는 같이 오래 알고 지낸 이들에게 판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지역광고신문의 귀퉁이에서 농지매물을 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농지를 찾게 되었다. 

   


○공동체

다양한 곳에서 교육을 받을 때의 좋은 점은 농업 관련 정보와 더불어 친구 혹은 인적네트워크를 쌓기 좋다는 점이다. 2019년부터 ‘청년창업후계농업인 모집’이 시행된다는 정보를 같이 교육을 듣던 친구에게 듣게 되었다. 영농정착지원금이 있다는 말과 40세 미만의 청년들만 선정한다는 말에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2019년 당시 전국 단위로 모집을 하고,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는 말에 창업계획서에 자신이 없던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고흥군 귀농귀촌창업사업’에 지원을 하였다. 이후 당시 사업에 제출하였던 사업계획서를 보강하여 2019년 하반기 주택지원사업에 지원하였고 선정되어 지금의 농지에서 가까운 마을에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사업계획서를 수정 보완하여 2020년 ‘청년창업후계농업인’에 선정되었으며, 2021년에도 친구의 도움으로 정보를 얻어 전라남도 고흥군 스마트팜밸리 모집에 사업계획서를 다시 보완하여 선정, 2022년 ‘청년경쟁력재고사업’에도 선정되었다. 해마다 다양한 보조사업이 나오고 사업계획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제출했었고, 제출하려는 사업계획서를 지금도 수정하고 보완하며 사용하고 있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군청이나 농업기술센터, 농업기술원 등의 농업기관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내가 재배 중인 작물 혹은 내 농지에 관한 정보나 보조사업들에 대해 살펴보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친구 혹은 주변 농업인들과 공유하고 있다. 각 지역에는 영농을 위한 작목반과 연구회 외에도 학습단체가 있다. 지금도 ‘소멸위기’라고하는 고흥군의 인구 고령화는 40%에 육박한다. 2019년에 귀농을 결심했을 당시에도 타지역에서 나고 자란 나는 같은 나이의 또래를 만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4-h연합회’라는 청년영농학습단체를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알게 되었고,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라는 슬로건으로 농업에 대한 정보 교류와 더불어 영농학습단체만의 지원정책도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된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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