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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비주얼
귀촌 워라밸을 찾아서 온 전남 장흥 귀촌7년차 이야기
등록일 : 2024-02-21 작성자 : 서울센터 조회수 : 609
사례 및 상세

안녕하세요~ 저는 전라남도 장흥군으로 귀촌한지 6-7년차 입니다!


처음엔 혼자 내려왔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까지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참 빠르기도 느리기도 했던 시간들이었는데요~

그저 도시에서의 평범했던 삶 속에서 시골로 오기까지 생각했던 이유는 단순했던 것 같아요!

바로바로 돈 이에요! 저에겐 돈이 필요했고, 그리고 돈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대를 갔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있을때, 부모님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전해 들었어요..!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은 1년, 나는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었죠,,

전역을 하고 나오니 형과 아버지는 생소한 지역의 원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았고 형은 곧바로 일을 나간 상태여서 저도 제대하자마자 바로 일을 찾으러 갔었죠..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습니다! 1년 정도 지나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가족들이 다 함께 모였고, 모두 다시 돈을 벌러 나가고...

또 다시 1년 뒤 원룸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1.5룸 그리고 또 1년 뒤 2룸까지... 



이제는 형과 나에게 방이라는 공간이 생겨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 속 무언가 공허했어요. 일 - 집 - 일 - 집의 반복,, 당연히 행복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주말이면 주변 하천을 걷기도 했지만,,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을까? 생각했죠,,



어느 날 출근을 같이하는 형이 나에게 말했어요.

"너는 왜 버스타고 음악만 들으면 왜 이리 우는 거냐? 노래가 그렇게 슬프냐?"

저도 알고 있었어요. 노래가 슬프기도 또 다른것이 슬프기도,,



그렇게 또 2년이 흐르고... 전세였지만, 작은 아파트로 이사로 오고 나는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조금 지친 것 같아요... 내년에는 안식년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제는 '돈'이 나를 움직이는게 아니라 내가 나를 움직이게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다 드리고 저는 무작정 내려오게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모했고 무식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냥 전남 장흥군이 고향이니까 바로 내려 왔지만,,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정보라든지 혹은 지인이라 든지 물어보거나 잘 찾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전남 장흥 귀촌 7년차 꿀팁>


요즘에는 귀농귀촌 종합지원 센터가 지역마다 대부분 있습니다. 전남 귀농귀촌을 담당하는 센터도 전라남도와 서울 2군데에 있어요~ 

서울에 계신분은 굳이 전남으로 내려가지 않고 , 서울에서 전라남도 귀농귀촌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점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가끔도 저에게도 전남으로 내려오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저는 백번 말하는 것보다 일단 겪어보라고 하고 싶지만,  최소한의 정보와 교육이 있으면 조금 더 정착하는데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앞에서 말한 센터 같은 곳을 보면, 귀농귀촌 교육을 하기도 하고, 지원 정책과, 지역과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직거래 장터 등을 운영하고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남 장흥 7년차의 생활>


저는 이러 한 정보도 없이 내려와 작은 마을에 마을회관 2층에 있는 건물에 살게 되었습니다! 

거주 조건은 전기세만 내고, 마을일을 도우면 좋겠다고 마을 분들께 허락을 받고 살게 되었어요~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그 중 특이한 경험은 마을 할머니들을 보통 ‘아짐’이라고 표현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자신 살았던 마을이나 지역을 붙이면 그분의 별칭아닌 별칭이 됩니다!!

예시로 인천에서 시집온 아짐은 인천아짐 그리고 옆마을 모산마을에서 오신 아짐은 모산아짐 이런식으로 불려요~! 



아짐들은 보통 밭일에 저를 부르시곤 했었는데, 특히 심거나 수확할 때 많이 도와드렸어요! 

제가 처음으로 했던 일은 감자를 수확하는 일이었는데요~ 여름에 하는 일 즉 하지에 감자를 캐는데, 이를 하지 감자라고 해요! 

처음에는 볕도 따갑고 꾸부려서 앉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 캐고 난 뒤 그 상쾌함이 좋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전라남도 장흥군)은 표고가 유명해서 표고목을 옮기거나 폐표고목을 수거하고 톱밥을 만드는 일도 했었습니다. 

표고는 참나무 무에 종균을 넣고 키우는데, 보통 산 비탈이나 하우스에서 표고목을 키웁니다! 

저는 하우스에 있는 폐표고목을 트럭에 옮기는 일을 했는데, 아무리 폐표고목이라고 해도 정말 수가 어마무시 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폐표고목을 트럭에 실어 둔 모습)


역시 시골하면 모내기가 빠질 수 없죠!! 저는 모내기 두 종류를 다 해 보았습니다! 

손모내기와 이앙기(모를심는 기계)에 모를 옮기고 나르는 일을 했는데요.

 뜨거운 햇볕에,,정말,,힘들기도 했지만,, 이때 나오는 새참과 점심은 그 맛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맛이 최고였습니다!


                                                  (손 모내기 하는 모습)


아시는 마을 형님의 소개로 축대를 쌓는 일도 했었는데요~ 쉽게 말하면 해안도로를 확장하는데 돌을 쌓아서 확장을 하는 일인데,

저는 돌을 잘 쌓을 수 있게 보면서 잘 맞게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알려주는 일이었어요!

그때 알았죠,, 바닷바람이 무섭다는 것을... 


                                                (해안도로에 축대를 쌓기 작업 중)


그리고 밭을 조금 구하게 돼서 밭농사를 지어보았는데요! 가을에 밭을 빌리게되어  그나마 가을에 파종가능한 밀을 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밀농사가 잘 돼서, 밀가루를 내고 그것으로 김치전을 해 먹어보았는데, 정말 신선하고 고소했어요,,!




또한 장날에 나가서 장사꾼이 되어보는 일도 해봤어요!! 5일장에서 사람들이 봄 나물을 팔 듯, 저도 그러한 경험이 하고 싶어서 장사꾼으로 나가 봄나물인 냉이를 캐서 팔기도 했습니다~돈을 버는 것도 버는 거지만 사람들과 흥정하고 이야기 나눈게 너무 좋았습니다~!


                                                (5일장 봄냉이 판매기판)


이렇게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 같지만....사실 처음에는 정말 힘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쉼 없는 밭일, 곱지 않은 시선 등.. 



그래서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시골마을에 내려와서 살고 싶다면, 저같이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에서 말한 정보와 프로그램을 미리 듣고 내려온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정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상 저의 전남 장흥 귀촌 7년차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