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 주민들 위한 음악회 열자”
- 해남 농촌문화공동체 ‘에루화헌’ 박양희 대표
곧추 세운 봉우리는 하늘만 바라고, 산등성이 돌벽은 세속의 접근을 허락않겠다는 듯 굵고 가파르다.
두륜산 투구봉,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서 바라본 자태는 신령함 그 자체다. 땅끝서 실려온 바다 내음도 넘지 못할 지세, 뒤돌아서 다시 북으로 내달리기에 충분한 기세다.
“투구봉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는다”는 삶들이 여전하다. 그 산자락에 터 잡으려던 오리농장, 태양광 부지는 모두 주민들 반대로 무산됐다.
그렇게 애지중지 지켜온 터에 2019년 10월 ‘에루화헌’(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이 들어섰다. “이제야 제대로 주인을 찾았는갑네.” 주민들도 인정하고 흐뭇해한다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에루화헌’은 치유 음악인 박양희(53)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에루화~, 흥과 즐거운 기운, 바로 그 소리다.
도시에서 살다 해남으로 귀촌한 지 6년, 박 대표가 꿈꿔온 농촌 문화 공동체의 터전이 에루화헌이다. 갖가지 인연으로 해남서 만난 음악·국악·영상 전문가들의 구심점이다. 매달 한 번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자며 의기투합한 ‘담소’의 기반이며, 그들의 연습장, 때론 공연장이며 주민과의 교류 마당이다.
일생 음악인으로 살았던 박 대표는 함평에서 태어나서 보성·장흥·논산·광주 등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다. “어느 날 주민등록을 떼보니 주소 변동을 기록한 페이지가 3장이 넘는 거예요.” 이렇게 사방팔방 떠돌던 박 대표가 해남에 딱! 자리를 잡았다.
인도에서 돌아와 딱 정착한 곳 해남
“2002년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미황사에서 초대해줘서 해남과 인연을 맺었네요. 그 뒤로도 김남주 문학제, 고정희 문학제 등을 계기로 자주 오갔죠. 그때마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 대표는 해남에 끌린 이유를 “풍토상 맞았다”고 말한다.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바다도 있고…. 겨울에도 춥지 않고 넉넉하니 외지인들에 대한 배척도 없어요. 일도 놀이도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학 시절 전남대 노래패 횃소리에서 활동했던 박 대표는 1995년 홀연히 인도 샨티니케탄(평화의 마을)으로 갔다. 시성 타고르(1861~1941)가 노벨문학상 상금과 사재를 털어 만든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평화의 배움터다.
박 대표는 그곳에 머물며 인도 전통악기 시타르와 따블라, 그리고 벵갈어를 배웠다. 그리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춤과 노래로 수행하는 수행자인 ‘바울’이 됐다. 이후 ‘나무(南友)’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박 대표는 8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10여 년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정착한 곳이 해남이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논산에 살고 있던 박 대표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해남으로 왔다.
해남에서 최초로 머문 곳은 현재의 에루화헌과 가까운 거리인 북일면 흥촌리의 빈집이었다. 막상 터 잡고 보니 인연은 넘쳤다. 해남엔 영상·음악·국악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많았다. 소리꾼 이병채(진도 국악고 교장), 가수 한보리·이우정·오영묵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이만 10여 명. 이들과 2015년 시화풍정 ‘담소’를 결성했다.
귀촌한 문화인들 ‘담소‘로 뭉치다
“지역의 문화예술 역량을 결집해 특화된 콘텐츠를 개발하고, 후진을 양성하며,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공연과 각종 연행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지역 문화를 일군다”는 게 지향점이다.
‘매달 한 번 공연’으로 이를 구체화했다. 첫 주 토요일. 대흥사 일지암이 주 무대로, 미황사, 대흥사, 시문학관, 도서관, 땅끝작은음악제, 김남주 문학제·고정희 문학제 등과 결합해 곳곳에서 무대를 열었다.
판소리 완창을 선보이고, 사물놀이로 흥을 돋우는가 하면 때론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서양음악, 국악 또는 영상이든 말 그대로 장르 불문이다. 여기에 덧붙여진 음유시인 박 대표의 노래가 산사의 정취를 한층 더 고즈넉하게 적셨다.
가사를 몰라도 선율에 맞춰 몸을 흔들고, 어떤 장르에도 추임새로 어울려 무대를 즐겼다.
평소 공연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농촌지역 주민들에겐 최고의 ‘눈호강’ ‘귀호강’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성했어요.”
박 대표의 꿈인 문화공동체가 영글었고, 에루화헌 탄생으로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대학 시절 노래패 활동을 함께하고, 지금은 사업가인 ‘동지’의 회사가 투구봉 아래 공간(2만8760㎡)을 인수, ‘에루화헌’ 간판이 달린 것이다. 5년 전 다른 업체가 공동체 생활을 염두에 두고 여러 동으로 조성한 공간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것. 운영권은 박 대표에게 주어졌다.
에루화헌은 예술 교육, 공연·워크숍,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맞춤이다.
관내에 소재한 100년 전통의 북일·북평초등학교의 문화예술 교육공간으로 활용 방안도 모색 중이다. 지역사회 관심이 필요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학습·놀이·문화의 장으로서 역할도 모색 중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대개 어머니로 배우는 동요도 잘 모릅니다. 마침 저에게 있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활용해 노래로 배우는 한국어 관련 프로그램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열린 공간, 활용하는 사람 뜻대로
정해진 건 없다. “활용하는 사람 마음”이라는 게 기본 자세다.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으려구요. 뜻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 믿는거죠.” 인도 샨티니케탄 평화의 공동체에서 수행한 ‘바울’ 다운 철학이다.
박 대표는 실제 인도 샨티니케탄과 교류도 진행 중이다.
‘담소’의 ‘평화의 시마을 해남-한국 해남과 인도 샨티니케탄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올해 지역 우수 문화교류 콘텐츠 발굴·지원사업에 선정된 게 컸다.
그 일환으로 지난 10월 ‘해남굿’이 에루화헌에서 펼쳐졌다. 원래 샨티니케탄을 찾아가 벌일 판이었지만, 코로나19로 막히면서 ‘비대면’ 교류로 전환했다. 이날 펼친 굿은 영상으로 담아 샨티니케탄으로 보냈다. 12월엔 해남에서 열리는 문화공연을 생방송으로 보내고 샨티니케탄에서도 문화공연 영상을 보내는 교류를 진행할 계획이다.
샨티니케탄 내 고아원과 해남지역 어린이집과 협약을 맺어 이뤄진 교류는 이미 진행 중이다.
에루화~, 귀촌한 문화예술인들이 농촌 사회에 흥을 북돋우고 있다.